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 5세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>'''PLVS VLTRA''' >'''보다 더 멀리''' [[합스부르크 가문]]의 수장이자 [[신성 로마 제국]]의 [[황제]]이며, [[스페인]]의 국왕,[* 통일 스페인의 1대 국왕은 공식적으론 [[이사벨 1세]] 부부이지만, 스페인이 완벽하게 [[동군연합]]된 [[압스부르고 왕조|합스부르크 스페인]]의 첫 군주는 카를 5세(카를로스 1세)이다. 카를의 모친 [[후아나(카스티야)|후아나 여왕]]도 형식상 공동 통치자였지만 그녀는 왕조 개창자로 볼 수 없는 데다 그녀가 유폐된 상태에서도 실권은 전적으로 카를이 갖고 있었기에 대체로 카를 본인만을 [[압스부르고 왕조|합스부르크 스페인]]의 첫 국왕으로 취급한다.] [[이탈리아]]의 군주 등 국경을 초월한 여러 직함을 갖고 있는, 중근세 [[유럽]]에서 '''가장 많은 국가의 왕관을 쓴 인물'''이다. 군주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부모와 조상의 덕을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이 받은 '''대단한 상속자'''로 기록되는 인물. 친가와 외가로부터 막대한 영토를 상속받아 [[카롤루스 대제]] 이후 [[나폴레옹 보나파르트|나폴레옹]]의 부상 이전까지 약 1,000년 동안의 기간 중에 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. [[어머니]]는 [[스페인]] 왕국의 [[후아나 1세(카스티야)|후아나]] 공주, 아버지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[[막시밀리안 1세(신성 로마 제국)|막시밀리안 1세]]의 후계자[*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명목상 선출직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황태자라는 신분은 없다. 그러나 이 당시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리프 공이 황제직을 계승할 것이 사실상 확정적이었으며, 그의 급사 후 그의 아들이자 황제의 손자인 카를 5세가 이 직위를 물려받는다.]이자 [[부르고뉴 공국]]의 공작이던 [[펠리페 1세|필리프]][* 부르고뉴는 막시밀리안 1세의 아내이자 카를 5세의 할머니가 되는 [[마리 드 부르고뉴]]가 계승권을 갖고 있었고, 마리가 사망한 후 장남 필리프가 공작위를 계승했다. 덧붙여서 이 때의 부르고뉴는 그 전대인 [[발루아 왕조|발루아부르고뉴 가문]]의 혼인합병으로 지금의 [[베네룩스 3국]]을 꿀꺽한 상태였다. 필리프는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 후아나와 결혼하여 카스티야-아라곤 연합왕국(스페인)의 국왕 [[펠리페 1세]]로 즉위하였고 나중에 카를에게 스페인을 물려주었다.]이다. 이처럼 화려한 친외조부모님 덕분에 카를 5세는 유럽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상속받는 행운아가 되었다. 훗날 [[대영제국]]이 표방한 '''[[해가 지지 않는 제국]]'''의 원조인 셈이다.[* 원조 정도가 아니라, '''"짐의 제국에는 해가 지지 않는도다"'''라는 말을 실제로 남겼다.] 약 40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 유럽 패권국 수장으로써 재위에 있었던 카를 5세는 다사다난한 일을 겪었다. 그의 치세는 [[중세]]에서 [[근대]]로 전환되는 역사적 변곡점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유럽 곳곳에 산재한 워낙 방대한 면적의 영토를 다스렸기 때문에 16세기 전반기의 유럽사를 이야기할 때 그를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. [[종교개혁]], [[오스만 제국]]의 유럽 침공, 신대륙 정복, 이탈리아의 [[르네상스]] 등 굵직한 역사적 흐름의 한 복판에 있었던 인물이었다. 영지에 따라서 칭호는 카럴 1세(플란더런, 네덜란드), 카를로스 1세(카스티야-레온), 카를레스 1세(아라곤-시칠리아),[* 통일 스페인 왕국이라고는 하지만 [[카스티야-레온 왕국]]과 [[아라곤 왕국]]은 여전히 다른 정부를 가지고 있었고, 카를 5세를 한 사람의 군주로 섬기는 [[동군연합]]의 형태였다.] 카를로 4세(나폴리), 카를 1세(오스트리아), 샤를 2세([[부르고뉴]]), 샤를 3세(룩셈부르크) 등등 저마다 제각각이다. 오늘날에는 통상적으로 그의 대표작위인 [[신성 로마 제국]]의 [[황제]] '''카를 5세'''로 불린다. 과거 다른 명칭으로 불렸던 현지에서도 최근에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서 '카를의 현지 표현 + 5세'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. 예를 들면 스페인에서 '카를로스 5세(Carlos V)'[* 훗날 보르본 왕조의 [[이사벨 2세]]가 즉위할 때, 이에 반발해 카를로스 전쟁을 일으킨 카를로스 공도 자신을 카를로스 5세라 자칭하기도 했다.][* 다만 스페인은 카를 5세 이후로도 카를로스의 이름을 가진 군주들이 많이 즉위했기 때문에 오류가 있는 표기법이다. 굳이 따지자면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로스 5세겠지만.]라 표기하는 식이다. 스페인의 관광지에서 외국인들을 위해 카를로스 5세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. 본 항목에서도 카를 5세로 통일하여 서술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